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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전쟁사/고대전쟁

세계전쟁사 : 그리스페르시아 전쟁#2 테르모필레 전투

by BrianKang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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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편 : 그리스페르시아전쟁#1 마라톤 전투

 

세계전쟁사 : 그리스페르시아전쟁#1 마라톤 전투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은 기원전 492~449년 페르시아 제국이 그리스를 총 3차례 침공하면서 벌어진 전쟁입니다. 이 전쟁의 발단은 이오니아 지방의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의 지배에 대항하여 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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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르시아 제국의 3차 그리스 원정 준비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한 페르시아 제국은 그리스와 휴전하였지만 다리우스 1세는 또다시 그리스 원정을 준비하게 됩니다.

 

하지만 페르시아 제국의 속국이었던 이집트가 반란을 일으켰고, 다리우스 1세가 반란 진압을 준비하였지만 갑작스럽게 죽게 됩니다. 

 

다리우스 1세가 죽자 아들이었던 크세르크세스 1세가 왕위에 올라 곧바로 군사를 일으켜 이집트의 반란을 진압하였고, 이후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그리스 원정을 준비하게 됩니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원정 준비로 헬레스폰토스 해협의 부교와 아토스 곶의 운하 건설 지시 및 약 16만명의 병력과 1,300척의 함선을 소집하게 됩니다.

 

또한 페르시아 제국은 기원전 481년 원정 이전에 각 그리스 도시국가들에게 특사를 파견하여 항복을 요구하였고, 그리스 북부와 중부 도시국가들은 페르시아 제국에게 항복하게 됩니다.

 

반면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페르시아 제국에게 항복하지 않았고, 이 둘을 주축으로 그리스 남부 도시국가들과 동맹을 결성하여 페르시아 제국에게 맞서게 됩니다.

 

결국 기원전 480년 원정 준비를 마친 크세르크세스 1세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면서 제3차 그리스 원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2. 제3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시작

 

크세르크세스 1세의 목표는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를 지나 아티카 반도로 남하하여 아테네를 점령하는 것이었습니다.

페르시아 군의 육군과 해군은 각각 사르디스와 포카이아에서 출발하여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지나 페르시아 군은 트라키아와 마케도니아까지 진출합니다.

페르시아 군의 원정 소식으로 그리스 연합군은 약 10,000명의 중장보병 부대를 템페 계곡으로의 파견을 결정하게 됩니다.

템페 계곡에 도착한 그리스 연합군은 사란토포로 고개를 통해 우회할 수 있다는 것과 1~2차 원정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대규모 병력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결국 승산이 없음을 알게 된 그리스 연합군은 템페 계곡에서 철수하게 되고, 페르시아 군은 손쉽게 테살리 지역까지 진출하게 됩니다. 

이에 아테네의 장군이였던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 군의 육군과 해군이 올 수 있는 길목에서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육지에서는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바다에서는 아르테미시온 해협에서 막을 것을 제안하였고 이 제안이 채택되어 본격적으로 전투를 준비하게 됩니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이 지형을 선택한 이유는 아티카 반도로 오기 위한 중요한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우선 페르시아 군이 바다를 통해 보급을 받아야 했기에  반드시 아르테미스온을 통과해야만 페르시아 군의 육군에게 보급을 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페르시아 군이 워낙 병력 수가 많았기에 그리스 연합군은 지형적 이점을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방어하고자 하였습니다.


3. 테르모필레 전투 : 300의 전설

 

그리스 연합육군은 스파르타의 왕 레오디나스 지휘 아래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방어를 준비합니다.

 

당시 그리스의 연합육군의 전력은 스파르타의 중장보병 3,300명(근위부대 300명 포함), 그리스 도시국가들로부터 지원받은 4,000명을 더한 약 7,000여 명이었습니다.

 

반면 페르시아 군의 병력은 약 160,000여 명의 병력이었으며, 그리스 연합육군에게 있어 페르시아 군과의 전력 차이가 많이 났었습니다.

레오디나스 왕은 테르모필레 협곡의 지형적 이점을 이용하여 페르시아 군의 공격을 막고자 하였습니다.

 

테르모필레 협곡은 겨우 전차 1대가 지나갈 수 있는 좁은 협곡이었고, 튼튼한 방벽이 있어 방어하기에 유리한 지형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오디나스 왕은 테르모필레 협곡의 좁은 입구에 자신의 부대를 배치하였고, 협곡을 우회할 수 있는 샛길은 포키스 군을 배치합니다.

테르모필레 협곡에 도착한 페르시아 군은 보병부대를 협곡으로 투입시켰으나, 테르모필레의 좁은 협곡으로 인해 병력을 축차적으로 투입시킬 수밖에 없어 제대로 전투를 벌일 수 없었습니다.

 

이에 그리스 연합육군은 중장보병 부대의 강력한 정면 공격을 통해 페르시아 군의 보병 부대를 격파하였고, 페르시아 군은 지속적으로 부대를 투입시켰으나 그리스 연합육군이 이 또한 격파하게 됩니다.

며칠 동안 페르시아 군의 공격을 잘 막았던 그리스 연합육군은 에피알테스라는 배신자로 인해 테르모필레 협곡으로 갈 수 있는 샛길을 페르시아 군에게 알려주게 되면서 불리해지게 됩니다.

 

페르시아 군이 샛길을 통해 공격하였고 샛길을 지키고 있던 포키스 군은 전투를 벌였지만페르시아 군의 막대한 병력을 통한 공격으로 인해 못 버티고 철수하게 됩니다. 

이에 레오디나스는 이 전투가 패배했음을 직감하고 대부분의 병력을 후방으로 철수시켰고, 300여 명의 근위부대와 일부 도시국가의 부대를 포함한 약 4,000명의 병력과 함께 페르시아 군과의 결사항전을 벌이게 됩니다.

 

하지만 페르시아 군의 압도적인 병력을 통한 포위공격으로 인해 레오디나스는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장렬히 싸우다 전사하고 부대도 모두 전멸하게 됩니다.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승리한 페르시아 군은 아테네로 진격할 수 있게 되었고, 아테네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닥치게 됩니다.


다음편 : 그리스페르시아 전쟁#3 살라미스 해전

 

세계전쟁사 : 그리스페르시아 전쟁#3 살라미스 해전

1. 아테네의 함락 아르테미시온 해협에 주둔 중이던 그리스 연합해군은 테르모필레 전투 패배 소식을 접한 뒤 아테네로 철수하게 됩니다. 테르모필레 협곡을 점령한 페르시아 군에게 후방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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