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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전쟁사/고대전쟁

세계전쟁사 : 알렉스드로스 대왕 동방원정 #1 그라니코스 전투

by BrianKang 2023.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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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전쟁사 : 펠로폰네소스 전쟁#1 레욱트라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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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흥강자의 출현, '마케도니아'

 

기원전 371년 레욱트라 전투 이후 그리스의 패자가 된 테베였으나, 테베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북쪽의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게 되니, 바로 북방의 마케도니아였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마케도니아는 약소국이었으나, 마케도니아를 군사강국으로 만든 사람은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였습니다.

 

강대국 테베의 볼모 생활을 하던 필리포스 2세는 마케도니아를 강대국으로 만들고자 테베의 명장 에파미논다스의 군대와 사선진 대형 전술을 관찰하며 배웠고, 이것을 마케도니아에 도입하고자 하였습니다.

 

일종의 '벤치마킹'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마케도니아로 돌아온 필리포스 2세는 테베에서 배웠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마케도니아의 군제를 개혁하여 군대를 육성하기 시작하였고, 수년간 노력한 끝에 마케도니아는 군사강국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강한 군사력을 갖춘 마케도니아는 재정 확보를 위한 금광 확보와 영토 확장을 목표로 주변국을 정벌하기 시작하게 되었고, 이윽고 포키스일대까지 침공하게 됩니다.

 

이를 무시할 수 없었던 테베는 아테네와 동맹을 맺었고, 마케도니아 군의 남하를 막고자 하였으나 마케도니아 군의 거센 공격으로 인해 테베 연합군은 방위선인 카이로네이아로 철수하게 됩니다.

기원전 339년 마케도니아 군과 테베 연합군은 카이로네이아 평원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어지게 됩니다.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의 승자는 마케도니아 군이었고, 이 전투로 인해 마케도니아는 새로운 그리스의 패자가 됩니다.

 

참고로 카이로네이아 전투에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도 참전하였고, 직접 기병부대를 이끌고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힌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2. '마케도니아 군'이 강해진 이유는?

 

마케도니아 군이 강해진 가장 큰 이유는 기병에 있었습니다.

 

당시 그리스 군은 오직 중장보병을 통한 밀집 방진 전술(팔랑크스)을 고집하였고, 기병은 중장보병을 보조하는 역할에 한하여 운용하였습니다.

 

하지만 마케도니아 군은 기병을 빠른 기동력을 통한 적의 약점에 단숨에 파고들어 궤멸시키는 공격 수단으로 운용하게 됩니다.

 

또한 기병을 돌격 및 돌파 위주의 중장기병과 정찰, 습격을 위한 경기병으로 나누어 보다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게 합니다.

 

마케도니아 군의 보병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마케도니아 군의 중장보병은 기존 창보다 1.8m가 더 길어진 약 4m의 창으로 무장하였고, 기존 중장보병보다 장거리에서 강한 충격력을 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어느 방향에서 오는 적에 대해서도 싸울 수 있게 빠른 대형 변경도 가능하였습니다.

 

이는 기존 중장보병과 다르게 마케도니아의 중장보병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대형을 변경하여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융통성이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창을 세우고 행군하는 마케도니아 군의 중장보병을 보면 "마치 숲이 움직이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적에게 심리적으로 압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입니다. 

 

마지막은 마케도니아 군이 새로 개발한 전술인 망치와 모루 전술이 있었습니다.

그림에서 보듯이 망치를 강하게 타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단단한 모루가 있어야만 합니다. 

 

사선진 대형을 통한 적을 고착ㆍ견제하는 보병 부대가 모루 역할을, 고착ㆍ견제당한 적의 측ㆍ후방을 강한 타격을 주는 기병 부대는 망치 역할을 하여 적을 포위ㆍ섬멸하는 전술이었습니다.

 

사선진 대형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마케도니아는 '그리스'에서 가장 강한 군대로 변화하였고, 그리스를 제패할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그리스의 패자가 된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는 테베와 달리 곧바로 페르시아 원정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당시 수세의 입장이었던 그리스가 반대로 공세의 입장을 취하여 페르시아 제국을 공격하게된 것입니다. 

 

그러나 기원전 336년 '필리포스 2세'는 의문의 암살을 당하게 되면서 상황은 급변하게 됩니다.

 

암살 배후로 여자 문제가 많았던 필리포스 2세에게 안 좋은 감정이 있었던 아내 올림피아와 아들 알렉산드로스였을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필리포스 2세의 죽음으로 마케도니아는 왕위 승계 다툼으로 내분의 위기에 놓이게 되고, 이 틈을 노려 테베를 포함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마케도니아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게 됩니다.

 

마케도니아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위기에 놓이게 됩니다.


3. '알렉산드로스 3세', 페르시아 원정을 떠나다!

 

그러나 마케도니아의 왕위 승계 다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으니,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3세가 왕위 승계 다툼에서의 최종 승자가 되어 마케도니아의 차기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하지만 테베를 포함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왕위 승계 다툼으로 혼란에 빠진 마케도니아를 공격하였으나, 알렉산드로스 3세는 기원전 334년 테베를 완전히 파괴하여 본보기를 보이면서 그리스를 완전히 통일하게 됩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로스 3세는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 페르시아 원정을 준비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필리포스 2세부터 알렉산드로스 3세에 이르기까지 '마케도니아'는 왜 '페르시아' 원정을 준비하게 된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그리스 패자로서의 자격을 인정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으로 많은 피해를 주었던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복수심은 그리스의 후대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만약 마케도니아가 페르시아에 대한 복수를 해준다면 그리스 도시국가들에 대한 호응을 쉽게 얻을 수 있었고, 반대세력 또한 약화시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이오니아 지방에 있는 그리스 인들을 페르시아로부터 해방시켜주기 위한 명분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이오니아 지방에 있는 그리스 인들은 쉽게 마케도니아에게 호응할 것이고, 페르시아 제국에 대한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었습니다.

 

이는 곧 페르시아 제국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전략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원정 준비를 마친 알렉산드로스 3세는 보병 32,000명과 기병 5,100명을 이끌고, 헬레스폰토스 해협을 건너면서 본격적으로 페르시아 원정을 시작하게 됩니다.


4. 알렉산드로스 3세, 그라니코스 강을 건너다!

 

알렉산드로스 3세의 페르시아 원정 소식은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다리우스 3세에게도 들려오게 되었고, 아마 다리우스 3세는 얼마 전까지 약소국이었던 마케도니아가 페르시아 제국을 상대로 원정을 한다니 기가 찼을 겁니다.

 

그래서 다리우스 3세는 휘하 장수들에게 알렉산드로스를 정벌할 것을 지시하였고, 그렇게 해서 헬레스폰토스 해협에 위치한 그라니코스 강에서 마케도니아 군과 페르시아 군이 대치하게 됩니다.

 

페르시아 군의 장군 멤논은 알렉산드로스가 그라니코스 강을 도하하지 못하게 막아야만 했고, 멤논은 알렉산드로스가 좌ㆍ우익 부대를 통해서 그라니코스 강을 도하할 것으로 판단하여 강을 따라 진형을 길게 배치합니다.

 

알렉산드로스 3세와 참모들은 그라니코스 강을 어떻게 도하할지에 대해 의논하였고, 파르메니온 장군은 야음을 틈타 그라니코스 강을 도하할 것을 건의합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는 "드넓은 헬레스폰토스 해협도 넘어온 우리가 조그마한 개울(그라니코스 강)을 못 넘어서야 되겠는가?"라며 파르메니온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낮에 도하할 것을 결정합니다.

 

다음날 아침 그라니코스 강에서 대치하게 된 마케도니아 군과 페르시아 군.

 

멤논은 알렉산드로스가 우익 부대를 이끄는 모습을 보고, 알렉산드로스 3세가 페르시아 군의 좌익으로 공격해올 것으로 예상하여 멤논은 페르시아 군의 좌익에 병력을 집중하게 됩니다.

하지만 멤논의 예상과 다르게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이 직접 우익 기병부대를 이끌고, 페르시아 군의 중앙 부대를 공격하게 됩니다.

 

이는 알렉산드로스가 멤논의 생각을 역이용한 것이었고, 이에 당황한 멤논은 알렉산드로스를 막기 위해 페르시아 군의 중앙부대로 병력을 집중하였고 그동안 마케도니아 군의 다른 부대는 별다른 피해 없이 강을 도하하게 됩니다.

알렉산드로스가 이끄는 우익 부대와 마케도니아의 중앙 부대가 페르시아 군의 중앙 부대를 집중 공격하여 무너뜨렸고 이에 다른 페르시아 군은 도망가게 됩니다.

 

 

그라니코스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알렉산드로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파죽지세로 페르시아 제국 깊숙이 들어가게 됩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방 원정은 이제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다음편 : 알렉스드로스 대왕 동방원정 #2 이수스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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