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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전쟁사/고대전쟁

세계전쟁사 : 펠로폰네소스 전쟁#1 레욱트라 전투

by BrianKang 2023.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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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전쟁사 : 그리스페르시아 전쟁#3 살라미스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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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시작된 전쟁, 펠로폰네소스 전쟁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이 종결되고, 그리스에는 평화가 찾아올 줄 알았지만 곧이어 전운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는 크게 두 세력으로 나누어졌고, 강한 해군력으로 그리스의 패자가 된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의 맹주 스파르타였습니다.

 

이후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결성하여 그리스를 지배하였고 곧이어 펠로폰네소스 반도까지 진출하고자 합니다.

 

위기를 느낀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동맹을 결성하여 델로스 동맹과 전쟁이 발생하는데 바로 이 전쟁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이었고 그리스에서 벌어진 일종의 내전이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은 총 3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제1단계(기원 전 431~421년)는 스파르타의 왕 아르키다모스가 군대를 동원하여 아테네를 침공한 전쟁이었고, 전쟁 초반 아테네는 스파르타의 공격을 잘 막았으나 역병이 돌면서 아테네 군은 큰 피해를 입게 됩니다.

 

특히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가 죽게 되면서 아테네는 멸망의 위기에 놓이게 되었지만 이후 전쟁은 계속되었고, 결국 니키아스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전쟁은 종결됩니다.

 

제2단계(422~412년)는 니키아스 평화협정에 따른 휴전 기간이었고, 큰 전쟁은 없었지만 작은 분쟁은 계속되었습니다.

 

제3단계(기원전 413~404년)는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와 세게스타의 분쟁에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개입하게 되면서 전쟁이 발발합니다.

 

하지만 아테네 총사령관 중 1명인 알키비아데스가 내분으로 인해 스파르타에 투항하였고,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 군의 모든 정보와 필승책을 스파르타에게 넘겨주게 됩니다.

 

알키비아데스의 투항으로 인해 전세가 유리해진 스파르타 군이 시칠리아 섬의 전투에서 아테네 군을 궤멸시켜 버렸고, 이 전투의 패배로 아테네는 급속도로 쇠약해지게 됩니다.

 

또한 스파르타에 투항한 알키비아데스는 아테네를 고립시키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게 됩니다.

 

우선 페르시아와 우호조약을 맺어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아 스파르타 해군을 창설하게 되고, 아테네에 종속되어 있던 에게해와 이오니아의 도시국가에게 독립을 부추겨 반란을 일으키게 합니다. 

 

이로 인해 아테네는 더더욱 약해지게 되고, 기원전 405년 아이고스포타미 해전에서 아테네 해군은 스파르타의 장군 리산도로스가 이끄는 스파르타 해군에게 패배하게 됩니다.

 

결국 기원전 404년 아테네는 스파르타에게 항복하게 되면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끝나게 됩니다.


2. 새로운 강자, '테베'의 등장

 

펠로폰네소스 전쟁 당시 힘을 기르고 있던 또 다른 세력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보에오티아에 위치한 테베였습니다.

 

기원전 404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리한 스파르타는 그리스에 대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각 도시국가들에게 충성을 강요하게 됩니다. 

 

기원전 395년 작은 도시국가였던 포키스와 로크리스 간의 분쟁이 발생하였고, 각 도시국가는 각각 스파르타와 테베에 지원을 요청하게 됩니다.

 

초반에 평화 협상을 통해 휴전을 하고자 하였으나, 결국 협상이 결렬되어 스파르타는 테베에 대한 정벌을 나서게 됩니다.

 

스파르타의 왕 클레옴브로토스는 동맹으로부터 병력을 차출하여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켰고, 강한 중장보병의 밀집방진 전술(팔랑크스)을 통해 승부를 보고자 하였습니다.

전투에 앞서 당시 스파르타와 테베의 전력을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당시 테베 군은 보병 6,000명(신성대 300명 포함), 기병 600명이었으며, 스파르타 연합군은 보병 10,000명, 기병 1,000명이었습니다.

 

병력으로 보면 스파르타 군이 훨씬 우세하였고, 또한 그리스 내에서 누구보다도 강한 중장보병을 보유하고 있었으니 누가 봐도 스파르타 군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테베의 총사령관 에파미논다스는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키고자 새로운 전술을 구상하게 되니, 바로 사선진 대형이었습니다.


3. '테베'와 '스파르타'의 격돌, 레욱트라 전투

 

먼저 스파르타 군은 종심 12열의 밀집 방진 대형으로 스파르타의 정예 부대를 우익 부대에 배치시키고, 나머지 부대와 테베 군의 우익을 공격하기 위한 기병대를 좌익에 배치시킵니다.

 

당시 모든 그리스군의 전투 방식은 정예 부대를 우익 부대에 배치하여 상대방의 좌익 부대를 먼저 궤멸시키는 쪽이 전투에서 승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테베 군의 배치는 스파르타 군과 달랐습니다.

 

에파미논다스는 테베 군의 좌익 부대의 종심을 50열로 늘려 병력을 집중시켰고, 테베 군의 중앙 부대와 우익 부대는 테베 군의 좌익 부대보다 후방에 배치시켰습니다.

 

정예 부대로 전투력이 강한 스파르타 군의 우익에 대해 테베 군은 더욱더 강한 병력과 인윈 수로 집중시킨 테베 군의 좌익 부대 공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습니다.

 

또한 테베 군의 중앙 부대과 우익 부대는 스파르타 군의 우익 부대가 스파르타 군의 좌익 부대를 지원할 수 없도록 견제해주고 테베 군의 좌익 부대보다 늦게 기동하여 적의 접촉을 최소화하여 전투력을 보존하는 것이 주요 임무였습니다.

 

마지막으로 테베 군의 정예군(특수부대) 일명 신성대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테베 군 좌익 부대의 측방에 배치시킵니다.

테베 군의 기존과 다른 배치를 본 스파르트 군은 아마 의아했겠지만 스파르타 군은 기존 방식대로 테베 군을 향한 공격을 시작하게 되었고 곧이어 전투는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스파르타 군의 기병 부대가 테베 군의 우익 부대를 공격하였고, 이에 테베 군의 기병 부대가 스파르타 군의 기병 부대를 맞아 싸우게 됩니다.

 

그 사이 테베 군의 좌익 부대와 신성대는 스파르타 군의 우익 부대를 공격하기 위해 빠르게 전진하였고, 테베 군의 중앙 부대와 우익 부대는 느리게 전진하게 됩니다.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테베 군은 전진속도를 통제하여 사선진 대형로 스파르타 군을 공격하게 됩니다.

전투 초반양상은 전투력이 강한 스파르타 군의 우익 부대가 테베 군을 유린하면서 스파르타 군에게 유리하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죽이고 또 죽여도 계속해서 전진해오는 테베 군의 병사들로 인해 지치게 된 스파르타 군의 최전선 병사들이 쓰러지기 시작하였고, 테베 군 신성대의 측면 공격으로 스파르타군의 정예부대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결국 테베 군의 50열로 구성된 좌익 부대와 신성대의 계속된 측면 공격으로 스파르타 군의 우익 부대는 궤멸되었고, 스파르타 군 우익 부대의 궤멸로 스파르타 군의 중앙부대의 우측이 노출되었습니다.

 

이를 포착한 테베 군의 좌익 부대과 신성대는 스파르타 군 중앙 부대의 노출된 우측을 공격하였고, 테베 군의 중앙 부대와 우익 부대의 협공을 받은 스파르타 군은 하나둘 궤멸되면서 전투에서 패배하게 됩니다.

레욱트라 전투에서 패배한 스파르타는 그리스의 주도권을 테베에게 넘겨주면서 테베가 그리스의 패자가 되었고, 테베는 마케도니아에게 패배하는 기원전 340년까지 그리스를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케도니아의 등장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불세출의 영웅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등장이기도 하였습니다.


다음편 : 알렉스드로스 대왕 동방원정 #1 그라니코스 전투

 

세계전쟁사 : 알렉스드로스 대왕 동방원정 #2 그라니코스 전투

1. 신흥강자의 출현, '마케도니아' 기원전 371년 이후 그리스의 패자가 된 '테베'. 하지만 '테베'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북쪽의 새로운 강자가 나타나게 되니, 바로 북방의 '마케도니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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