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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전쟁사/현대전쟁

제2차 세계대전-태평양전쟁#2 둘리틀 공습

by BrianKang 2020.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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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깨어난 거인! 복수의 칼날을 갈다!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미국은 본격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됩니다. '미 태평양 함대' 사령관 '니미츠' 제독은 '미 태평양 함대'의 신속한 전력 복구와 태평양 전선의 주도권을 일본으로부터 탈환해야 했습니다. 또한 <진주만 공습>으로 무너져 내린 미 태평양 함대뿐만 아닌 미국 국민들의 자존심과 사기를 고양시켜주어야 했습니다.

 

당시 '미 태평양 함대'의 즉각 투입 가능한 전력은 4척의 항공모함('렉싱턴', '호넷', '엔터프라이즈', '요크타운')이었습니다. '니미츠' 사령관의 작전은 4척의 항공모함으로 일본 해군과 전투를 통해 막대한 피해를 주어 태평양 전선의 주도권을 탈환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먼저 '미 태평양 함대'의 전력 복구가 선과제였으며, 가능한 전투를 당분간 피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 국민들에게 <진주만 공습>의 공포와 좌절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군사적 결과를 빠른 시간 안에 얻기를 원했습니다. 실제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니미츠' 사령관에게 "니미츠한테 당장 진주만에서 나가서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돌아오지 말라고 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진주만 공습>에 대한 복수와 미국 국민과 군인들의 사기를 고양시키기 위해 미국 수뇌부는 일본 본토를 폭격하겠다는 과감한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미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에 미 육군의 'B-25 폭격기'를 탑재하여 일본 근해까지 은밀하게 기동하여 일본 주요도시('도쿄', '요코스카', '고베', '나고야' 등)를 폭격하는 계획이었습니다.

미 육군 항공대 제임스 헤롤드 두리틀 대령, 출처 : 위키백과

일본 본토 폭격대 지휘관으로 유명한 항공기 경주인이었으며, 미국 MIT의 항공공학 박사 출신인 미 육군 항공대 '제임스 둘리틀 중령'이 임명됩니다. 그리고 'B-25폭격기'에 대한 운용 경험이 풍부했던 '제17폭격비행단'이 일본 본토 폭격대로 선정됩니다. 그 중에서 승무원들에게 작전의 위험성을 충분히 설명하고, 지원한 승무원을 대상으로 훈련을 시키게 됩니다.

 

하지만 이 작전은 처음부터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당시 'B-25폭격기'는 미 항공모함의 짧은 간판에서 이륙할 수 없었고, 설령 이륙이 가능하더라도 함공모함으로의 재착륙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렇기에 B-25 폭격기 편대는 임무를 마치고 우호국이었던 중국까지 비행해야 했고, 만약 일본군의 중국 점령지에 착륙한다면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힐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제한사항에도 불구하고 미국 수뇌부는 이 작전을 결행하고, 본격적으로 작전을 준비하게 됩니다. 먼저 'B-25 폭격기'를 미 항공모함에서 이륙할 수 있도록 경량화시키고, 중국 본토까지 장거리 비행할 수 있도록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합니다. 그리고 각각의 'B-25 폭격기'는 500파운드의 폭탄 4발(고폭탄 3발+소이탄1발)을 장착하고, 경량화를 위해 모든 기관총을 제거하게 됩니다.

호넷호에 탑재된 둘리틀 폭격대의 미 육군 B-25 폭격기, 출처 : 위키백과

그 결과 16대의 'B-25 폭격기'의 경량화 및 개조가 성공하게 되고, 16대의 'B-25 폭격기'는 항공모함 '호넷 호'에 탑재시킵니다. 그리고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 호'와 순양함 5척, 구축함 7척은 '호넷호'의 호위함대로 편성됩니다.

 

1942년 4월 2일 오전 10시 모든 준비를 마친 '둘리틀' 중령의 'B-25 폭격대'와 호위함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떠나 북태평양 항로를 통해 일본 본토를 향해 이동하게 됩니다.

 

2. 미국의 반격, 둘리틀 공습

 

1942년 4월 18일 새벽 '둘리틀' 중령의 B-25 폭격대와 호위함대는 일본 감시정에게 발각됩니다. 곧바로 미 순양함 '내슈빌 호'을 출격시켜 접전 끝에 일본 감시정을 격침시킵니다. 하지만 이미 일본 감시정은 이 상황을 보고하였고, 지체하면 기습효과가 사라질 위기의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두리틀' 중령은 'B-25 폭격대'의 긴급출격을 결정하게 되고, '둘리틀' 중령 지휘 아래 16대의 'B-25 폭격대'는 이륙을 준비하게 됩니다. 1942년 4월 18일 08:20 '둘리틀' 중령이 직접 조종하는 첫번째 B-25 폭격기가 이륙에 성공하였고, 곧이어 15대의 'B-25 폭격기'도 모두 이륙에 성공하여 일본 본토를 향해 비행하게 됩니다. 

 

'둘리틀' 중령의 'B-25 폭격대'가 일본 본토에 비행할 무렵 일본 수뇌부는 방심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항공모함의 함재기들은 항속거리가 짧았고, 일본 본토 공격을 위해 항공모함은 일본 근해까지 근접해야 공격이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수뇌부는 그 다음날인 4월 19일 오전에 미 항공모함의 공격이 있을 것으로 오판하게 됩니다.

제대로 오판한 일본 수뇌부는 요격기를 출격시키지 않았고, 어떠한 방공태세도 취하지 않게 됩니다. 1942년 4월 18일 정오에 도쿄 상공에 도착한 '둘리틀' 중령의 'B-25 폭격대'는 일본 본토에 대한 기습적인 폭격을 시작하게 됩니다. '둘리틀' 중령의 'B-25 폭격대'는 일본군의 비행장, 해군기지, 수리시설 등을 대상으로 집중적으로 폭격하였습니다.

 

폭격을 마친 '둘리틀 중령'의 'B-25 폭격대' 중 1대를 제외한 15대는 일본을 탈출하는 것에 성공합니다. 탈출하지 못한 B-25 폭격대 16번기 '윌리엄 파로우' 중위를 포함한 대원들은 일본군에게 생포되어 결국 총살됩니다.

 

일본 탈출에 성공한 '둘리틀' 중령의 'B-25 폭격기' 15대는 동중국해로 진입하여 중국 '절강성'을 향해 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중국 '장개석' 군이 장악하고 있던 비행장에 착륙하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나타난 '둘리틀' 중령의 폭격대를 일본군 폭격대로 오인하고, 모든 비행장의 불을 소등하고 대공태세를 강화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둘리틀' 중령의 'B-25 폭격대'는 폭격기를 포기하고, 낙하산 탈출을 감행하게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둘리틀' 중령의 'B-25 폭격대' 대원들은 중국군과의 조우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10명의 대원이 실종되고, 이 중 8명의 대원은 일본군에게 포로가 됩니다.

 

포로로 잡힌 8명의 대원 중 3명(딘 홀마크 중위, 해롤드 스파트 병장 등)은 일본군에게 총살당하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나머지 5명은 일본군의 갖은 학대 속에 구금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로버트 메더' 소위가 '이질'로 인해 죽게 되고, 나머지 4명의 대원은 종전 이후 1945년 8월 20일에 석방됩니다.

 

3. 둘리틀 공습 이후...

 

'둘리틀' 중령의 'B-25 폭격대' 공습 결과로 일본인 사상자 363명과 군 시설과 공장 등 350동의 피해를 주었습니다. 일본에게 물리적으로 큰 피해를 주지 못했으나, 정신적으로는 정말로 큰 피해를 주게 됩니다. 당시 도쿄에 일본인들이 신으로 숭상하는 '천황(天皇)'이 있었고, 그 '천황(天皇)'이 있는 도쿄가 기습적인 공습을 당하여 모든 일본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둘리틀' 공습으로 인해 무고한 중국 민간인들이 일본군에게 학살되는 비극이 발생하게 됩니다. '둘리틀' 공습 이후 1942년 5월 일본군은 중국 절강성 일대의 토벌작전이라는 명목으로 약 18만명의 병력을 투입시킵니다. 일본군은 중국군의 비행장을 확보하기 위한 작전으로 말하였지만, 이 과정에서 약 25만명의 중국 민간인들이 일본군에게 무차별하게 학살되는 끔직한 일이 벌어집니다. 일종의 '둘리틀'공습에 대한 감정적 보복이었습니다.

 

일본 내부에서는 '둘리틀' 중령의 공습을 허용시킨 일본 해군에게 비난의 화살이 돌아가게 됩니다. 결국 일본 해군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미국의 공습을 방지하기 위해 기존 외곽방어선을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기존 외곽방어선 확장을 위한 새로 점령해야할 요충지로 '미드웨이' 섬을 선택하게 되고, '야마모토' 사령관은 미드웨이 섬 공략을 위한 작전을 구상하게 됩니다.

 

또한 '야마모토' 제독은 미국의 공습이 가능했던 이유로 '미 태평양함대'의 항공모함에 있다고 보았고, '미 태평양함대'의 항공모함을 제거해야만 태평양 전선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야마모토' 제독은 '미드웨이' 섬의 공략과 동시에 '미 태평양 함대'의 항공모함을 '미드웨이' 섬으로 유인하여 제거하는 작전을 동시에 세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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